인간의 삶에서 죽음은 누구나 맞는 엔딩이다. 남은 이들은 망자의 안녕을 기원하며 각자가 속한 국가와 종교, 문화 등 환경에 따라 망자를 기리는 장례를 치른다. 조선은 유교 국가라는 특성에 따른 예제에 맞춰 의식을 치렀고 왕과 왕비의 장례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실시하는 국장(國葬)으로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장경희 교수의 『국장과 부묘용 의물을 만든 조선의 장인』은 왕과 왕비의 죽음 직후부터 시작되는 절차와 이에 필요한 각종 의물을 제작한 장인에 대해 다룬 전문 학술서이다.
조선은 국장을 포함하여 국가의 각종 의례나 공역을 치를 때 이를 수행하기 위한 임시관청인 도감(都監)을 설치했다. 현재 전해지는 의궤(儀軌)는 도감의 기록물로 공역에 대한 각종 텍스트와 시각 이미지가 집약되어 있다. 저자는 30여년 넘는 시간동안 수많은 의궤와 관련 유물을 기반으로 조선의 왕실 공예와 장인(匠人)에 대한 많은 내용을 규명해 오늘날 공예사 연구에 귀중한 토대를 마련했다. 이 책은 그간 저자의 연구를 주제별로 집대성한 시리즈 중 하나로 뚝심 있게 걸어온 저자의 학문적 내공과 깊이, 경험을 느낄 수 있다.
의궤에는 장례를 위해 설치된 각종 도감이 등장한다. 이는 절차의 성격에 따라 구성되었는데 크게 보면 시신을 모시고 혼백에게 제사를 드리며 조문객을 맞는 빈전과 혼전도감, 능역을 조성하는 산릉도감, 종묘에 위패를 봉안하는 제반 업무를 진행하는 부묘도감으로 나눌 수 있다. 왕실의 장례라 더 복잡한 감이 없지 않지만 흐름을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의 장례 절차와 맥을 같이한다. 저자는 독자의 이해를 고려한 맥락으로 도감의 특성과 상황을 전제해 책을 장, 절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각 장별 주제에 맞춰 의례 상황 속에서 전개된 여러 내용을 철저하게 ‘제작’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그래서인지 매우 두꺼운 책이지만 절차의 이해가 쉽고 관심 있는 주제에 따라 내용을 찾기 편하다.
Ⅰ장 ‘국장시 시책과 시보 및 지석과 표석의 제작 장인’은 장례를 총괄하는 국장도감 개괄과 국장도감에서 주도해 만드는 망자의 상징물 제작의 주요 요소를 논했다. 저자는 초입에 국장도감의 역할과 구성, 참여한 장인의 장색과 직무를 정리하였다. 그리고 망자를 상징하고 기리며 올리는 시호가 담긴 시책(諡冊), 인장인 시보(諡寶)와 능에 매납 하는 지석(誌石)과 비각에 넣어 주인을 표시하는 표석(表石)을 각 하위 장으로 구성했다. 특히 재료의 산지부터 채취, 가공, 성형에 대한 일련의 과정과 주요 요소, 이를 다루는 전문 장인의 분야와 역할을 단계별, 시기별로 구성했다.
Ⅱ장 ‘왕릉 조성시 정자각과 석의물 등의 제작 장인’은 무덤 조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조선은 왕과 왕비의 장지를 조성하고 시설물 축조를 위한 도감인 산릉도감(山陵都監)을 설치해 공역을 수행하였다. 각 건물을 축조하는 조성소와 능의 봉분을 담당하는 삼물소, 석물을 담당하는 부석소, 각종 철물 제작, 공급을 담당하는 노야소, 기와를 제작 공급하는 번와소 등 유형과 특성에 따라 하위 소를 구성하였다. 각 소에는 직무에 맞춰 화원(畫員), 목수(木手), 석수(石手), 야장(冶匠), 도배장(塗褙匠), 소목장(小木匠), 병풍장(屛風匠) 등 다른 분야에 비해 투입된 분야의 수는 적지만 많은 수의 장인이 공역을 수행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산릉도감의 특성과 각소의 제작 활동을 장인의 역할과 함께 논하였다.
Ⅲ장 ‘종묘 부묘시, 혼전과 추상책보의 제작 장인’은 신주(神主) 봉안을 중심으로 내용이 서술된다. 왕과 왕비 사후 신주는 혼을 모시고 제향을 하는 혼전(魂殿)에 종묘에 부묘되기 전까지 삼년간 모셔진다. 이 장에서는 혼전 봉안 후 종묘에 모셔지기까지의 과정을 혼전도감(魂殿都監)과 부묘도감(祔廟都監)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제기와 옥책, 의장의물, 금보 등 주요 의물의 제작 과정과 장인, 전각을 수리해 혼전을 조성하는 과정과 목수의 역할 등 혼전부터 부묘까지 전개되는 제작 활등을 다양한 방면에서 살펴보았다.
이 책의 전반적 서술 특징 중 하나는 공간과 장인을 중심으로 공예와 건축을 아울러 다루는 점이다. 이는 오랜 시간동안 저자의 연구 성과에서 꾸준히 확인되는 연구 관점이자 방법 중 하나로 이 책의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왕실 의례를 중심으로 장인을 다루지만 무형문화재 ‘전통 기술’로 대변되는 건축, 공예로 특정하지 않고 의례를 하는 ‘공간’, 그 안에서 사용하는 ‘기물’로 제작 이야기를 아우름으로써 조선의 왕실 의례와 관련 공역을 수행하는 장인의 역할을 입체적이고 유기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저자의 이러한 폭넓은 연구 관점은 『국장과 부묘용 의물을 만든 조선의 장인』에 앞서 출간된 또 다른 저서 『국혼과 연향용 공예품을 만든 조선의 장인』(민속원, 2022)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공예품마다 법식과 경향, 사용 공간과 용도 등 다양한 제작 이유가 내포되어있다. 장인은 이에 맞춰 자신이 지닌 기술을 적용해 공예품을 구현해나갔고 왕실 공예는 신분사회에서의 최상위층을 위한 공예품으로 당대의 기술이 집약되었다. 이 책은 앞으로 조선의 공예와 장인을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