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J Art Hist > Volume 319; 2023 > Artic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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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주노, 「중국의 천둥신(雷神)에 관한 연구-그 형상을 중심으로」, 『중국문학』 107 (2021), pp. 269-288; 류희승, 「한중일 뇌신(雷神)에 관한 고찰」, 『일본학보』 71 (2007), pp. 335-348; 노성환, 「高麗와 日本의 雷神圖에 관한 比較硏究」, 『일어일문학』 82 (2019), pp. 225-248; 同著, 「조선과 에도의 뇌신(雷神)에 관한 비교연구」, 『일본어문학』 83 (2019), pp. 301-327.
6) 박순이는 『삼강행실효자도』에 등장한 뇌신의 형상이 『오륜행실도』에서 변화되어 그려졌다고 언급하였으나, 도상 분석이나 배경 고찰은 시도하지 않았다. 박순이, 「조선 시대 행실도류 효자도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한국문화학과 박사학위 논문, 2023), pp. 144-146.
9) 『山海經』, 「大荒東經」, “東海中有流波山, 入海七千里. 其上有獸, 狀如牛, 蒼身而無角, 一足, 出入水則必風雨, 其光如日月, 其聲如雷, 其明曰夔. 皇帝得之, 以其皮爲鼓, 橛以雷獸之骨, 聲聞五百里, 以威天下.” 국역은 정재서역, 『산해경』 (민음사, 1985)를 참고함. 밑줄은 필자가 표시함.
10) 천둥신을 일컫는 雷神, 雷獸, 雷公, 雷母, 雷師, 雷王 등 다양한 명칭의 기원과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이주노, 「중국의 천둥신(雷神)에 관한 소고(小考)-명칭을 중심으로」, 『중국문학』 101 (2019), pp. 73-78.
11) 王充, 『論衡』, 「雷虛」, “…圖畫之工, 圖雷之狀, 纍纍如連鼓之形. 又圖一人, 若力士之容, 謂之雷公, 使之左手引連鼓,右手推椎, 若擊之狀. 其意以為,雷聲隆隆者, 連鼓相扣擊之意也, 其魄然若敝裂者, 椎所擊之聲也. 其殺人也, 引連鼓相并擊之矣….” 국역은 성기옥 譯, 『논형』 (동아일보사, 2016), p. 268을 참고함. 밑줄은 필자가 표시함.
12) 『중국 고대회화의 탄생』 (국립중앙박물관, 2008) p. 102에서는 무씨사 좌측 석실 천장의 2층 화면을 <雷公天罰圖>라고 명명하였다. 한편, 『中國畫像石全集』 권1 (山東美術出版社, 2000), p. 29에서는 화면의 중간에 머리가 길고 고개를 한 쪽으로 기울인 채 구름 위에 서 있는 형상을 雷母로 보았다.
13) 집안 오회분 5호묘 벽화 출토 牛頭人身의 神農氏를 비롯해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人面鳥, 人頭獸, 瑞獸, 仙人, 四神 등 신비롭고 다양한 요소들이 그려졌으나 뇌신도상은 확인하지 못했다; 풍신뇌신상이 한국과 일본에서 각기 다르게 수용되는 양상에 대해서는 한정희, 앞의 논문, pp. 27-29를 참조.
14) 『삼강행실도』에 대해서는 미술사학뿐만 아니라 역사학, 국어학, 서지학 등 다각도에서 연구가 이루어졌다. 각 분야의 연구 성과를 모은 대표적인 책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편, 『조선 시대 책의 문화사』 (휴머니스트, 2008)가 있다.
15) 언해본에 비해 한문본은 현전하는 수량이 매우 적으며, 『삼강행실효자도』의 경우 고려대학교 만송문고 소장본과 보물로 지정된 개인 소장본, 그리고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본 정도가 확인된다. 고려대학교 만송문고 소장본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 이영상, 「삼강행실효자도 연구-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만송문고 『삼강행실효자도』를 중심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한국 및 동양미술전공 석사학위 논문, 2002); 보물로 지정된 개인 소장본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 최경훈, 「德源堂本 『三綱行實孝子圖』의 發見과 價値」, 『고인쇄문화』 19 (2012), pp. 91-111;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본은 영인본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삼강행실도 효자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2); 그 외 일부 내지만 남아있는 한문본이 있다고 하나, 실물은 확인하지 못했다. 류탁일, 「初刊 三綱行實圖에 對하여」, 『한국어문학』 11 (1974), pp. 85-113.
18) 「三剛行實圖序」, “…孝子則謹錄太宗文皇帝所賜孝順事實之詩, 兼取臣高祖臣溥所撰孝行錄中名儒李齊賢之贊, 其餘則令輔臣分撰….” 국역은 『삼강행실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2)를 참고함.
21) 이 논문에서는 각 계통의 현전하는 판본 중에서 제작 시기가 가장 이른 것으로 평가되는 중국 국가도서관 소장 『전상이십사효시선』과 일본 국립공문서관 소장 『新鐫徽郡原板校正絵像註釈便覧興賢日記故事』 판본을 사용하고자 한다. 宇野瑞木, 위와 같음.
24) 김문경이 『효행록』에 수록된 이십사효도와 중국 북방지역 고분벽화의 이십사효도와의 관련성을 제시한 이후 이를 수용한 여러 후속연구들이 진행되었다. 김문경, 「高麗本 『孝行錄』과 中國의 「二十四孝」」, 『한국문화』 45 (2009), pp. 3-14; 박순이, 앞의 논문; 최정운, 「동아시아의 이십사효도(二十四孝圖)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 논문, 2018).
25) 橋本草子, 「慶応義塾大学斯道文庫蔵写本「廿四孝詩」について」, 『紀要論文』 56 (2008), pp. 2, 14. 일본 류코쿠대학 도서관에는 삽화가 있는 책과 삽화 없이 본문만 수록된 책 등 2종의 『신간이십사효시선』이 소장되어 있다.
28) 현전하는 기년명 『묘법연화경』 사경변상도의 작례와 제7권의 「관세음보살보문품」 중 운뇌박우난이 그려진 예는 다음을 참조. 문선희, 「고려시대 『묘법연화경』 사경변상도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 논문, 2005), p. 48의 <표4> 및 p. 85의 <표11>.
30) 문선희는 고려 金剛峯寺本(1081년)이 거란대장경판본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가장 빠른 시기의 작품으로 보았다. 또한 『묘법연화경』 제3권 중 三草二木 도상의 변용과 관련하여, 고려 금강봉사 변상도가 요대 판본과의 영향관계를 보여 주며 송대 판본 도상으로 변화하는 중간단계를 보여준다고 주장하였다. 이 과정에서 요대 佛宮寺 출토 판본에 수록된 龍, 風神, 雷神이 <도14>로 제시되었다. 문선희, 「고려시대 『妙法蓮華經』 寫經變相圖의 도상연구」, 『미술사학연구』 264 (2009), pp. 19-21.
31) 『成宗實錄』 卷39, 成宗 5年(1474) 2月 3日條 “命減膳, 又命禁酒, 因雷變也”; 『中宗實錄』 卷20, 中宗 9年(1514) 9月 27日條 “而今當秋季, 數旬之內, 雷變疊見, 天之譴告極矣, 豈無所召而然乎. 予甚懼焉。 自古有非常之災, 則有非常之變, 上下其可不各自省察之哉”; 『肅宗實錄』 卷23, 肅宗 17年(1691) 9月 20日條 “政院以雷變陳戒, 上嘉納之.”
36) 김도윤, 「도갑사 〈관세음보살32응신도〉 도상 연구」, 『불교미술사학』 9 (2010), p. 66. <도갑사 관세음보살32응신도>의 근거 경전에 관한 논의는 pp. 45-46 및 각주 3 참조
37) 『오륜행실도』의 편찬 배경과 양식적 특징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정붓샘, 「조선후기 오륜행실도에 나타난 화풍 연구」, 『梨院학술논집』 2 (2004), pp. 55-108.
38) 본고에서는 1459년의 원간본으로 보물로 지정된 서강대학교 소장 『월인석보』 권1,2를 사용하고자 한다. 조선 시대에 제작된 팔상도 목록은 다음을 참조. 박수연, 「조선 시대 팔상도의 특징」, 『불교미술사학』 4 (2006), pp. 224-226의 <표1>.
39) 역주 『월인석보』 제4 (세종대왕기념사업회), “魔王이 더 怒 야 十八億 兵馬 모도니 變 야…울에 번게 며….”, “귓것 히 구룸 지픠 더니……눈 한 귓거시 소리 霹靂 니도 이시며….” 출처: 세종한글고전 웹사이트.
40) 타케시 쿄고쿠는 뇌신도상의 발생에 가루라 도상이 영향을 미친 근거로 가루라 도상에서 자주 보이는 뱀을 물거나 짓밟는 모습이 『酉陽雑俎』나 『錄異記』에서 뱀을 잡아 먹으려고 하거나 짓밟는 기록과 유사한 점과 唐代 밀교 경전인 『金剛光焔止風雨陀羅尼經』에서 가루라가 용을 퇴치하고 폭풍우나 霹靂 등의 재해를 막을 수 있는 뇌신의 성격을 가진다는 점을 들었다. 京極健史, 「中国における雷神像の変容」, 『饕餮』 13 (2005), pp. 111-137; 羅玲, 「中国皮影における雷公像の図像的考察」, 『早稲田大学大学院文学研究科紀要』 62 (2017), p. 680 참조 및 각주 6 재인용.
41) 한재원은 팔부중상의 실제 造像이 인도에 기원을 두고 있으나 인도에서는 각 신들이 거의 개별적으로 조성되었으며, 중국에서 불경이 번역되는 과정에서 팔부중 또는 천룡팔부라는 집합적 개념으로 우리나라에 수용된 것으로 보았다. 8-9세기 석탑 부조에 새겨진 가루라상은 날카로운 부리의 표현을 특징으로 하며 주로 천신상 옆에 배치된다. 한재원, 「한국 고대 신중상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학위 논문, 2018), pp. 32-33, 36, 102-108.
42) 김현중은 주뢰등천군이 새의 부리와 날개를 가지고 있는 점과 용을 잡아먹는 특성이 팔부중의 하나인 가루라와 유사하다고 보았다. 주뢰등천군이 지물로 번개를 일으키는 雷錘와 雷鑽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가루라와 차이가 있지만, 『封神演義』나 『西遊記』와 같은 신마소설에서 주뢰등천군이 새의 형상을 한 神으로 등장한 것처럼, 조선후기 민중들은 가루라와 주뢰등천군에 큰 차이를 두지 않고 새의 형상을 한 神으로 인식했으며 두 신을 혼동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김현중, 「조선 후기 신중도의 『옥추경』 도상 차용」, 『동악미술사학』 32 (2022), pp. 78-81.
43) 『옥추경』의 원래 명칭은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玉樞寶經』이며, 『玉樞寶經』이라고도 한다.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은 도교 雷部의 뭇 신들 중 최고의 尊神이다. 뇌부에서는 五雷(天雷, 地雷, 水雷, 神雷, 社雷)를 관리하며,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벌한다. 鍾肇鵬, 이봉호·신진식·최재호·이대승·박용철 역, 『도교사전』 (파라아카데미, 2018), pp. 489-490, 681-682; 한편, 『옥추경』이 중국에서 간행된 시기와 편찬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 唐末에 杜光庭(850-933)이 지었다는 설과 集注本의 卷末에 玄陽子(張嗣成의 號)가 쓴 跋文을 근거로 1333년에 장사성 (?~1344)이 편찬했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이정재, 「『옥추경(玉樞經)』의 성립과 활용 및 사상사적 의의」, 『한국종교』 42 (2017), pp. 150-1; 문순회, 「『옥추경』 판본의 서지적 특성에 관한 연구」, 『동아시아 불교문화』 50 (2022), pp. 314-5.
47) 尹翠琪은 영국도서관 소장 『高上神雷玉枢雷霆宝經符篆』의 後序, 결손흔적, 삽화 등을 분석하여 이 판본이 종래에 알려졌던 1333년에 간행된 원대 초판본이 아니라 명대 영락연간(1403~1424) 또는 그 이후인 15세기에 간행된 후판본이라고 주장하였다. 尹翠琪, 「道教版畫研究:大英圖書館藏 《玉樞寶經》 四註本之年代及插畫考」, 『道教研究學報:宗教、歷史與社會』 2 (2010), pp. 135-183.
48) 우리나라에 현전하는 『옥추경』 판본은 5종 이상으로 확인되며, 가장 오래된 판본은 감로사본(1563년)이다. 본고에서는 그림이 수록된 1570년의 무등산 안심사본 『옥추경』 (연세대학교 도서관 소장)을 사용하고자 한다. 『옥추경』의 현전 판본에 대해서는 문순회, 앞의 논문, p. 317의 <표1> 참조; 尹志华에 따르면 삽화가 수록된 『옥추경』 조선 시대 판본으로는 안심사본(1570년), 보현사본(1733년), 계룡산본(1888년)이 있으며, 이와 비슷한 중국 판본으로는 영국도서관 소장본과 일본 天理大學 소장본이 있다. 尹志华, 「朝鲜刊本『玉枢宝经』中的神像研究」, 『대순사상논총』 22 (2014), p. 135-136.
49) 『正統道藏』 太平部, 『法海遺珠』 卷二十三 “第一帥鄧伯溫 育面鳳觜 銀牙 朱發 藍身 長百丈 右手雷鍾 左手雷鋼 生兩肉翅 眼放光 足龍JT飛 行三界香峻鬼神”, 김현중, 앞의 논문, p. 78, 각주 22 재인용. 밑줄은 필자가 표시함.
51) 이주노는 雷公이라는 명칭이 남성화된 자연신의 개념이 되면서, 송대 이후부터 雷母와 함께 쓰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뇌공과 뇌모가 부부가 된 이야기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 이주노, 「중국의 천둥신(雷神)에 관한 소고(小考)-명칭을 중심으로」, p. 76.
52) 민금수에 따르면, 조선 후기 감로도나 팔상도에 그려진 뇌신도상 중 獸頭有翼상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며, 그 중에서도 부리가 있는 상이 압도적으로 많다. 민금수, 앞의 논문, pp. 31-35.
53) 조선 후기 팔상도는 『월인석보』에 수록된 팔상판화의 전통에 『釋氏原流應化事蹟』의 다양한 도상이 추가된 형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영종, 「朝鮮時代 八相圖 圖像의 淵源과 展開」, 『미술사학연구』 215 (1997), p. 44.
54) 박수연은 『월인석보』나 18세기 초 팔상도에서는 경전에서와 같이 뇌신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방해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었으나,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1775년) 이후에는 석기모니의 위신력으로 감화를 받은 뇌신이 오히려 마왕을 공격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박수연, 앞의 논문, pp. 233-235.
55) 차미애, 『공재 윤두서 일가의 회화』 (사회평론, 2014), pp. 432-436. 본고에서 참조한 삽화는 같은 책, p. 436, 도 4-216로 수록된 『충의수호전』 明 容與堂刊本이다.
56) 차미애, 위의 책, pp. 208-209. 『관규집요』는 1652년에 중국에서 목판본으로 初刊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숙종연간(1674-1720)에 古活字本으로 復刊되었다. 앞의 책, p. 196; 한편, 민금수에 따르면, 『관규집요』에 그려진 뇌신처럼 머리에 작은 관을 쓰고 있는 도상은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감로도에 등장하는 뇌신도상의 대세를 이룬다. 민금수, 앞의 논문, pp. 15-16; 윤두서의 <격호도>를 제외하고, 조선 시대 일반 회화에서 뇌신도상을 주제로 한 그림으로는 金德成(1752-1784)의 <雷公圖>가 있다. 김덕성의 뇌공도로 알려진 작품은 2점이 있는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뇌공도>(덕수 2272)와 <신선>(덕수 1637)이며, <뇌공도>(덕수 2272)에서는 뇌신이 북을 메고 양손에 망치와 칼을 든 力士형으로 그려졌다. 한편, <신선>(덕수 1637)과 관련하여, 배원정은 雷公圖像이 아닌 魁星圖像으로 수정할 것을 제안하였다. 배원정, 「魁星 圖像의 기원과 전개」, 『미술자료』 84 (2013), pp. 49-73.
57) 『釋氏原流』는 석가모니의 행적과 사상이 인도와 중국에서 전개되는 과정을 그림과 글로 정리한 책으로, 400여개의 일화가 그림과 글로 수록되었다. 1422년에 편찬되기 시작하여 1425년에 처음 간행되었고, 우리나라에도 전래되어 널리 유통되었다. 우리나라에는 불암사본(1673년)과 선운사본(1711년) 두 종류의 판본이 있다. 석씨원류의 명·청대 판본과 우리나라 전래 경위 및 판본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이영종, 「『석씨원류』와 중국과 한국의 불전도」 (서울대학교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 박사학위 논문, 2016), pp. 28-37, 165-175; 본고에서는 명대 成化本(1486년)을 토대로 1673년에 경기도 불암사에서 간행한 불암사본의 영인본인 이광우 역, 『석씨원류응화사적』 (법보원, 2006)을 사용하고자 한다.